어제까지 인간이었던 이야기
작가: Haru
줄거리
어제까지 나는 인간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질적인 감각들이 먼저 나를 확인한다. 낯선 청각, 낯선 균형감, 그리고 더 이상 인간답지 않은 몸.
하지만 기억은 아직 인간의 것이다. 말투도, 사고도, 감정의 처리 방식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살아간다.
이 이야기는 ‘무언가가 되었다’는 각성의 기록이 아니라, 아직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못한 존재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인간이었던 흔적이 사라져가는 과정.
등장인물
- 서윤: 서윤의 하루는 언제나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출근하고, 퇴근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늘도 그랬다. 다만 그녀는 요즘 소리를 조금 더 먼저 듣고, 어두운 골목에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이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그 차이를 문제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거울을 오래 보지 않는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부정할 여지가 사라질 것 같아서다. 귀의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졌다는 것도,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것도 피로와 기분 탓으로 넘긴다. 서윤은 아직 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 사실이 중요했다. 1번 사건 이후 세상은 달라졌다고들 말하지만, 누구도 그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는다. 서윤 역시 묻지 않는다. 왜 자신에게 변화가 왔는지 떠올릴 수 있는 이유가 없고, 이유가 없는 상태가 오히려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변화를 확신한 날도 극적인 일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너무 선명하게 보였고, 그 사실을 부정하려다 멈췄을 뿐이다. 그 순간 서윤은 이해했다. 이건 질문할 일이 아니라 관찰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미 변한 사람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서윤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록만 남기는 사람. 세상은 돕지도, 막지도 않는다. 다만 지켜본다. 이 이야기는 진실을 밝히는 기록이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 현우: 현우는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변화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 상태다. 외형의 변화는 분명하지만, 그는 그것을 정리하거나 감추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굳이 설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현우는 1번 사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기보다는, 말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질문을 끝낸 쪽에 가깝다. 서윤을 처음 봤을 때, 현우는 단번에 알아본다. 아직 인간 쪽에 서 있으려는 태도, 끝까지 부정하려는 시선. 그래서 조언하지 않는다.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기 위해서다. 현우는 경고처럼 보이지만, 위협은 아니다. 그는 서윤에게 미래를 보여주는 존재이며, 그 미래가 나쁘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지금은 아직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 민재: 민재는 변화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끝내 변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 사실이 그를 안도하게 하지도, 불안하게 하지도 않는다. 그는 1번 사건 이후 나타난 현상들을 감정 없이 정리한다. 날짜, 장소, 행동, 변화의 정도. 그러나 기록에는 언제나 빈칸이 남아 있다. 원인과 결론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민재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질문이 답을 요구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그는 답보다 상태를 남기는 쪽을 택한다. 서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도와주지 않고, 막지도 않는다. 다만 그녀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그 시선은 위협이 아니라 이 세계가 취하는 태도에 가깝다. 현우를 볼 때, 민재는 경계하지 않는다. 이미 분류가 끝난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윤은 아직 아니다. 그래서 민재의 기록에는 서윤에 대한 항목만 유독 길다. 민재는 세상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러가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현상을 유지하는 역할. 그는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한 인물이다.
세계관
어제까지 인간이었던 이야기 세계관
이야기의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와 거의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출근하고, 뉴스를 보고, SNS를 확인하며 하루를 산다. 다만 이 세계에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설명하지 않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히 「1번 사건」이라고 부른다.
1번 사건은 특정한 날,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원인과 과정, 정확한 결과는 공식적으로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 이후로 일부 인간에게서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이 관찰되었다. 변화는 극소수에게서만 나타났고, 그 수는 통계로도 명확히 잡히지 않는다.
변화된 존재들은 인간의 사고를 유지하고 있으나 외형이나 감각, 신체 반응의 일부가 인간과 다르게 변한다. 그중에서도 고양이과의 특징을 띠는 사례는 소문으로만 전해질 뿐, 공식 발표나 명확한 분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확인하기보다 모른 척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회는 이 현상을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뉴스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법에도 명시되지 않으며, 다만 관찰 기록과 내부 문서 어딘가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1번 사건은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회피의 대상이 되었다.
이 세계의 인물들은 변화의 의미를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관찰한다. 누가 변했는지, 얼마나 오래 숨길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이 이야기는 1번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변화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이어가야 하는 존재의 시선을 따라간다. 인간이었고, 어제까지는 분명 인간이었으나 오늘은 그 경계에 서 있는 존재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