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전염된 열기 3
가방 안은, 온통 분홍색과 푸른색의
비닐 포장지로 가득 차 있었다.
익숙한 사각형의 포장지들.
교과서와 필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질 만큼
많은 수의 콘돔이,
터져 나오기 직전처럼 가방을 채우고 있었다.
그냥 물건을 훔쳤다는 누명과는 차원이 다른.
더 더럽고, 치명적인 모함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내가 몸을 파는 여자라는, 그런 종류의 낙인.
머릿속에서 수만 개의 회로가
타들어 가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소리를 질러야 하나? 아니면 울어야 하나?
부인해야 하나? 아니면
충격받은 척 굳어 있어야 하나?
정답을 찾기도 전에,
와르르-.
내가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가방이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가방 안에 억지로 쑤셔 넣어졌던
콘돔들이 폭포수처럼
교실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의
포장지들이 반짝이며,
내 발 주위로 무참하게 흩어졌다.
찰나의 정적.
그리고 그 정적을 깨고,
교실 뒷문이 활짝 열렸다.
“어머, 이게 다 뭐야?”
서여은이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기 위해 돌아온
그녀와 그녀의 무리.
그리고 그들 뒤로, 다른 여학생 몇몇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서여은의 눈이 바닥에 널브러진
콘돔들을 발견하고는,
기다렸다는 듯 과장되게 커졌다.
그녀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경악과 혐오가 뒤섞인,
완벽하게 계산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윤하령… 너, 이런 걸 학교에 가지고 다녀?”
그녀의 목소리는
교실 전체에 똑똑히 울려 퍼졌다.
그녀의 친구들이
일제히 경멸 어린 탄성을 질렀다.
뒤따라 들어온 아이들의 눈빛은
순수한 충격과 호기심,
그리고 은밀한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최악의 무대였다.
관객은 너무 많았고, 증거는 명백했다
나는 그 완벽하게 짜인 무대 위에서,
가장 연약한 희생양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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