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기록되지 않은 시작
고블린의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왼쪽 다리를 끌며 반 박자 늦게 들어오는 스텝.
초반 지역 개체. 평균 공격 주기 1.2초.
…게임 설정과 동일하다.
나는 한 발 물러섰다.
회피는 가능하다. 패턴은 알고 있으니깐
하지만.
무기가 없다. 스킬도 없다. 레벨도, 스탯도 없다.
상태창이 없다는 건 인벤토리도 없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플레이어라면 이 단계에서 튜토리얼 검을 지급받는다.
나는 받지 못했다.
고블린이 자세를 낮췄다.
돌진 패턴.
1.2초, 찰나의 순간
나는 숨을 고르며 판단했다.
피하면 살 수 있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다.
미니맵이 없다. 안전지대도 없다. 나는 이 세계에 등록되지 않았으니깐
하지만 살기 위해선 싸운다.
아니.
시스템이 정의한 ‘전투’가 아닌 방식으로.
고블린이 땅을 박찼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발을 내디뎠다.
충돌.
데미지 수치는 뜨지 않는다. 효과음도 없다. 전투 로그도 생성되지 않는다.
대신—
질량이 부딪혔다.
어깨에 전해지는 둔중한 충격.
고블린의 몸이 튕겨 나갔다.
녀석이 비틀거린다.
이상하다는 표정.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공격 판정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객체’가 밀어냈을 뿐이다.
고블린이 다시 단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나는 녀석의 손목을 잡아 바닥에 내팽겨쳤다.
시스템 메시지는 없다.
스킬 발동도, 성공 판정도 없다.
뼈가 꺾이는 감각만이 남았다.
고블린이 쓰러졌다.
정적.
잠시 기다렸다.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경험치 획득] 없음. [아이템 드롭] 없음. [전투 종료] 없음.
나는 고블린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역시.”
세계는 나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 말은—
내가 이 녀석을 죽였다는 사실조차 기록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숲 또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확신했다.
이건 버그가 아니다.
나는.
규칙 밖에 서 있다.
시체는 있다. 피도 흐른다.
하지…
전체 본문은 스토라이즈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품 정보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