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와 당근마켓

1화

‘노블레스 르사주’의 수석 매니저, 일명 ‘팩트 폭격기’로 불리는 강 이사는 몽블랑 만년필의 촉으로 이력서의 빈칸을 톡톡 두드렸다. “차지연 회원님. 뉴욕 파슨스 미대 수료, 현재 직업은 프리랜서 설치미술가 및 프라이빗 아트 튜터. 작년 국세청 신고 소득 금액은 3,500만 원이네요.” “아, 그건 어디까지나 세속적인 ‘현금 흐름’일 뿐이에요.” 지연이 우아하게 다리를 꼬며 덧붙였다. “예술가의 가치를 데이터로 환산하는 건 너무 폭력적이지 않나요? 제 작품의 미래 가치를 생각하면 연봉은 무의미하죠.” 강 이사는 감흥 없는 눈으로 지연을 쳐다보았다. “네, 뭐 좋습니다. 그럼 원하시는 배우자의 조건을 볼까요. 나이는 위로 7살까지, 즉 50세 이하. 학력은 스카이(SKY) 이상 또는 해외 명품대. 직업은 ‘오직 사업가’. 월수입 최소 4천만 원. 강남권 자가 보유, 그리고… 자산 규모 300억 이상?” 강 이사는 얕은 한숨과 함께 만년필을 탁, 내려놓았다. “지연 씨. 이 정도 스펙의 남성들은 저희 쪽에 1억 원짜리 가입비를 내고 들어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딱 두 가지예요. 20대의 젊고 완벽한 육체, 아니면 자신과 동급의 재력을 가진 처가. 지연 씨는 어느 쪽에 해당하시죠?” “저는 ‘급’이 다르잖아요.” 지연이 당당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저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예술적 감수성과 품격을 제공할 수 있어요. 상위 0.1%의 남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뭔지 아세요? 바로 트로피 와이프를 넘어선 ‘뮤즈(Muse)’예요. 게다가 제 자산도 적지 않아요. 제 작업실에 있는 ‘자궁의 기하학’이라는 연작 시리즈, 그거 시가로 치면 최소 3억은 훌쩍 넘습니다.”

강 이사가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회원님. 그 3억짜리 뮤즈의 영감은, 당장 현금화가 가능합니까?” 지연의 미간이 미세하게 떨렸다. “예술을 어떻게 당장 시장 바닥에 내놓듯 해요?…! 제 작품은 제가 죽고 나면 빈센트 반 고흐처럼 가치가 폭등할 위대한 유산이에요.” “그렇다면 남성분 입장에서는 회원님이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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